짙푸른 잔디공원

늦잠을 잤다. 시차적응의 빈틈을 타서 아침형 인간이 되어보겠다는 야심은 김빠진 맥주마냥 미지근해져버린지 오래다. 한국에서처럼 9시가 넘어야 슬슬 눈이 떠지는 걸 보니, 시차적응이 끝났나보다. 임시 거처의 내 방은 창이 서쪽에 나 있고 그나마 앞건물에 가려서, 아침 햇살이 들지 않는다. 아침에는 햇살을 받으며 깨는게 좋다. 나중에 방을 구하면 햇살 잘드는 동향을 얻으리라 생각해본다.

찌뿌둥한 몸으로 기지개를 펴고, 마지못해 이불 밖으로 나왔다. 간단히 토스트에 우유와 씨리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무얼 먼저할까 잠시 고민했다. 오늘은 한가한 나날 중에 나름 할 일 많은 날이다. 커튼을 살짝 걷어보니 날씨가 꽤나 좋다. 처음 밴쿠버에 왔을 때는 맨날 비오고 어두컴컴하드니 떠날 때가 되니까 날씨 좋은 날이 이어지고 있다.

다운타운에 가기전에 조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곳 기온은 아직 낮은 편이지만, 햇살이 따사로워서 반팔만 입고 나가도 괜찮은 느낌이다. 잘 때 입던 추리닝과 반팔티셔츠를 입은채 씻지도 않고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사는 동네가 좀 구석진 동네인데, 기름진 까치집 얹은 머리 그대로 이렇게 나가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 동네 사람들은 평소에도 늘 이러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평소에는 그들을 보며 참 꾀죄죄하게 다닌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막상 이러고 나가기엔 참 맘편하다.

집 근처 언덕 길을 약 3분정도 뛰어 올라가면 동네 공원이 있다. 작은 축구장하나 있는 퍼블릭 공원인데, 그 허름한 공원에도 잔디가 잘도 깔려있다. 사실 깔려있다기보다 그냥 방치된거 같은데, 잔디는 참 짙푸르다. 잔디구장에서 두어바퀴 뛴다. 한 때는 100M를 12초 플래쉬에 뛰던 나였지만, 그건 이제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허튼 소리가 되어버렸다. 두바퀴 뛰었는데 숨이 찬다. 어릴 때는 숨차게 뛰고나면 아랫배 옆구리쪽이 아팠는데, 이젠 심장 고동이 거셀 뿐이다. 무리하면 운동도 독이라는 말을 핑계삼아 그만 뛴다.

놀이터에 앉아서 숨을 고르는데, 공기 참 맑다 싶었다. 가슴 깊숙히 들이쉬는 공기는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도 내 땀을 식히고 (땀을 식히는건지 식은 땀을 흘린건지 모르겠지만) 강렬한 햇살은 내 피부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그만큼 주름도 깊어지겠지만 말이다. 공기가 맑아서인지 햇살이 매우 강렬한데, 다행히 눈아래 깔린 짙푸른 잔디가 그 눈부심을 줄여준다. 저 짙은 녹색의 잔디는 보고만 있어도 숨과 마음이 고르게 되는거 같다.


대여 핸드폰 반납

이 곳에 와서 핸드폰을 빌렸다. 한달간 빌린 비용은 통신요금까지 합쳐서 약 8만원 정도. 집을 알아볼 때 빼고는 별로 쓸모가 없었다. 미국에서는 프리페이드폰을 30불정도에 사서 몇백분까지 쓸 수 있다던데, 여기는 그런게 없는걸까? 그래도 렌탈폰 이용해서 덕분에 마음에 드는 방을 얻어 생활했으니, 그 비용에 포함된거라고 애써 합리화해본다. 딱 한달 빌린거고, 오늘이 그 반납 일. 이것 때문에 다운타운까지 나갈 생각을 하니 귀찮다싶다. 또 다른 일거리를 찾아봐야지. 그래 우체국도 들리고, 출금도 하자.


불필요한 짐 보내기

여기서 사서 읽은 책 한권과 가져왔던 쓸데 없는 책을 비롯해, 필요없는 짐들을 서울의 집에 보내기로 했다. 내가 가져온 짐은 최소한의 옷가지와 노트북, 카메라등 전체 무게가 17Kg정도이다. 세계여행자치고 최소한의 무게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참 무겁다. 일본에서 최군을 통해 몇가지 짐을 돌려보냈지만, 더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배낭여행객들 보면 내 두배쯤 되어보이는 가방을 맨 여자들도 잘 돌아다니던데 놀라울 뿐이다. 난 이것도 무거워서 쩔쩔매고 있는데 말이다.

여기서 산 책 한권은,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UBC)서점에 갔다가, 아웃라이어와 함께 베스트셀러에 올라가 있는 책이었는데, 작고 가볍고 가격도 싼데다 영어 연수생으로써 영어공부도 좀 하려고 샀던 것이다. 철학을 유머와 함께 쉽게 설명한 책인데, 영어 유머가 내게 쉬울리 없다. 절반 넘게 읽었으나, 웃은 부분은 많지 않다. 그래도 종교 섹션에 있던 agnostic(불가지론) 하나는 건졌다. 내 종교적 관점이 딱 그거인거 같다, 불가지론.

야심차게 들고왔으나 결국 쓸데 없게 된 책은, 스패인어 입문 서적. 결국 아르헨티나에서의 스패니쉬 연수와 탱고 입문은 접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와서야 이런저런 가치판단 기준과 원칙들을 정했는데, 아르헨티나 일정도 가지쳐지게 되었다. 덕분에 이 책은 필요 없어졌다.

린디 연습화 한켤레도 보냈다. 집으로 보낼까 그냥 버릴까 고민했지만, 어차피 보내는 비용에 5천원 안팎으로 추가될거 같아서 보낼 물건들의 충격흡수재역할도 시킬겸 보냈다. 세계여행을 떠나오면서 댄스화를 두켤레나 가져온 나는 뭐니?

이제껏 모은 일본에서의 티켓이라든지, 결국 나중에는 꺼내보지도 않을 기념품들도 함께 넣었다. 밴쿠버 중앙 우체국에 가서 소포상자를 사서 다 챙겨넣고, 가장 싼 방법으로 보냈다. 1.8Kg이었는데 20불(23000원)정도였고, 5~6주 걸린댄다. 머 적어도 나 도착하기전에는 도착하겠지. 그럼 내 짐 이제 15Kg정도로 줄은건가? 휴~


캐나다 마지막 출금

국제 현금 카드라는게 있다. 시티은행의 그것이 제일 유명한거 같고, 다른 은행들도 다 나름의 카드를 발급해준다. 나는 주거래 은행인 국민은행에서도 하나 발급받아서 둘다 가져왔다. 둘 다 수수료도 저렴하고 현지ATM에서 현지통화로 바로 출금할 수 있어서 참 편하다. 캐나다에서는 시티은행을 아직 못봤음에도, 이곳의 은행들과 나름의 제휴가 되어있는건지, 거의 수수료없이 출금되는거 같다. 이런 편리한 것이 있다니 놀랍다.

다행히 출국한 뒤로 환율이 조금 안정세에 접어들어서 조금씩 숨통이 틔이고 있다. 출국전에 환전한 환율에 비하면 아주 행복한 환율인 셈.

오늘 출금이 아마 캐나다에서는 마지막일게다. 남은 여정에 필요한 금액에 20불의 여유를 더해 환전했다.
 

여행예산 정리

여행 예산과 실제 지출내역을 별도의 스프레드시트 파일로 관리 중이다. 원래 가계부를 Numbers로 관리하고 있었는데, 이번 여행만을 위해 따로 파일을 만들었지. 구글 닥스로 관리할까 하다가, 네트워크가 안되는 곳이 많을테니, 로컬에서 관리하기로 했다. 다행히 아직까지의 지출은 예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10%씩만 초과돼도 전체 금액기준으로 보면 꽤 큰 금액이라서 잘 관리해야겠다 싶다. 지출 내역을 일일히 적으려다가 관두었다. 일본에서 모든 금액을 다 적었더니, 그 관리하는 시간이 더 걸리는듯 하다. 환전내역과 카드 지출과 남은 잔액만 관리하기로 했다. 결국 사용한 총액임에는 차이가 없고, 은행계좌나 카드 지출 내역으로 기록이 되어있으니 확인하기 편하다.




대충 계산해보면, 한국에서의 지출보다 2.6배정도의 금액을 소비하고있다. 한국에서보다 2.6배 즐거운 생활을 하면 되는거지 뭐.  이왕 내 멋대로인거 3배 즐겁게 생활하자.


밴쿠버 생활의 끝자락

이번 여행 프로젝트에서 가장 긴 일정인 밴쿠버 여정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내일 시작하는 록키산맥 투어를 다녀오면 2박3일이 남은 셈. 밴쿠버에 왔던 이유와 목표가 뭐였더라. 아쉬움을 남겼던 어학연수를 마저하고, 아이폰 개발도 하며 쉬는 것이었던거 같다. 이 나이에 일반 ESL학원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쉽게 이해가지 않는다. 전화통화중 어머님 말씀이, "그래, 영어는 좀 늘었냐?", 내가 대답하길, "나 영어 원래 잘하잖아"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래 그래'라고 답해주실만도 한데, 어머님 반응은 늘 그렇듯 아주 이성적이고 시니컬하다. "췟, 행여나 그러시겠소"라고 말씀하시는군. 하하하, 보통 친아들은 과장해서 자랑하고 그러는 거 아닌가? 아무튼, 이렇게 어머니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영어실력을 유지한채 영어학원 수강은 끝이났다.

학원 생활은 참 재미도 없고, 별로 유익하지도 않았으나, 이제 전혀 어학연수에 대한 미련이 없으니, 원하던 목표는 달성했다 하겠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단 한번의 기회만 있는 것 같다. 두번째가 되면 처음의 설레임이나 긴장감도, 또 그 만큼의 즐거움이나 경험치도 없어지는듯 하다.

또 하나의 목표였던 아이폰 개발은, 아쉽게도 전혀 성과가 없다. 나름 이번 휴식기간중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었던 부분이었다. 사실 우습다, 여행중에 아이폰 개발이라니, 그리고 누구도 나에게 기대하지 않으며 시키지도 않는 일이다. 내가 하지 않기로 하면 그만인 부분인거지. 그러고보면 그 모든 스트레스가 내 안에서 나오는거 같기도하다. 간단히, 하지말지 뭐 하고 마음먹어버리니, 여행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좀 아쉽긴해...


평범한 하루

밴쿠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Vancouver Public Library. 자유 열람대에서 내 노트북으로 인터넷도 쓸 수 있어서 좋다. 도서관에 대한 얘기는 기회가 되면 따로 적기로 해야겠다.

이 것이, 평범치 않은 여정중에, 평범한 하루의 일이다. 내일 아침 록키 투어 일정에 늦지 않으려면, 일찍 귀가해서 밥해먹고 설겆이도 끝내고 일찍 잠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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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캐나다 서부지역의 린디합 경진대회인 LindyBout III에 참가했다. 매우 지역적이고 조촐한 행사인거 같아서 큰 기대는 안했는데, 의외로 볼거리가 많아서 흐뭇했던 행사다. 토론토쪽에서도 참가하는 사람도 많았고, 나름 캐나다 지역에서는 꽤 큰 행사인듯.

아무리 같은 춤을 추는 사람들이지만, 서울과는 확연이 다른 분위기가 느껴져서 좋았고. 수준급의 라이브 밴드의 연주를 들으며 훌륭한 댄서들의 즉흥 공연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반면, 힘든 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이름 외우기. 난 서울에서도 닉네임 물어보며 다니는 스타일은 아닌데, 얘네들은 거의 꼬박꼬박 통성명하고, 그 다음에는 꼭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한다. 난 그들의 이름을 들어도 잘 못알아듣겠는데다가, 내가 보기엔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기억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같이 춤추면서 이름도 모르고 지내는 것보다는 괜찮은 것 같다. 서울에 돌아가면 이제부터라도 닉네임 꼬박꼬박 챙겨물으며 기억하고 다녀야겠다.

아, 한가지 소득이 있다면, 이제는 춤을 권할때 하는 말인, "Would you like to dance?"가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




사회자 마크. 스웨덴에서도 종종 사회봤던 아저씨인데 여기서도 보여서 깜짝 놀랬다. 알고보니 시애틀에서 살고 있고, 시애틀이나 이쪽에서 하는 행사 사회를 자주 보는 것 같아. 그럼 시애틀에서 하는 캠프 지터벅에서도 분명 다시 보게 될듯. 춤도 꽤 추는 편이고, 이쪽 세계를 잘 알아서 사회도 더 잘 보는거 같다.



최근 서울에서도 추던 스윙라인댄스를 이사람들도 추던데, 스타일은 약간 다른 느낌. 나도 함께 추고 싶었다구요.



셋째날 있었던 퍼포먼스의 하나. 춤사위들이 아주 훌륭하더라. 의상도 멋지고.




맨 왼쪽은 누군지 모르겠고, 가운데는 캐런, 오른쪽은 이와나. 캐런과는 처음에 춤이 너무 잘맞아서 친해졌었는데, 나중에는 좀 거리감이 느껴졌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ㅋㅋㅋ



쉬는 시간에 DJ가 나이트용(?)음악을 틀어줬는데, 몇몇이 나와서 막춤을 선보여줬다. 화끈하게 잘들 흔들며 잘 노는 모습이, 역시 이들은 춤꾼이구나 싶었다. 맨 왼쪽에 청바지에 회색셔츠 입은 팔뤄가 가브리엘인데, 린디도 잘추는데다 솔로댄스까지 공동 우승하고, 저런 막춤도 끝내주게 소화해 내더군. 지나갈 때마다 넋놓고 쳐다봤다. 린디 한 곡 추었으나, 다시 홀딩 신청하기는 버거운 상대였다. 마지막날 밤에 파트너 블루스도 참가해서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그건 잠시 후에 다시 적어야겠다.



솔로 재즈 댄스 결승 모습. 서울에서도 고수들은 멋진 솔로 댄스 모습을 보여주지만, 여기는 조금 더 폭넓고, 또 관객들도 잘 즐기는 거 같아. 라이브 재즈 연주에 맞춰 자기 몸으로 연주하는 댄서들의 즉흥 공연은 한참을 넋 놓고 쳐다보게 할 뿐. 가운데 살짝 보이는 가브리엘을 찍은건데 가리는 분들이 많으시군. ㅎ
 
 


에릭과 줄리. 리더인 에릭과는 강습날 화장실에서 처음 만났다. 내가 큰 일을 보고 나왔는데, 에릭이 밖에서 급한 상태에서 한참 기다렸나보더라고. 내가 나오자 화가 났었는지, 아니면 가볍게 툭 던지는 농담조의 말이었는지, '안에서 잔거냐'고 궁시렁 거리고 들어가더라고. 뭐, 암튼 서로 별로 좋은 첫인상은 아니었지.

한편, 줄리와는 같이 강습듣고 저녁때 춤추면서 안면 트게 됐다. 알고보니 이들은 커플인듯. 마지막 날, 조금 이른 시간에 일찍 짐을 싸서 나가길래, 왜 그리 일찍 가냐고 물었더니, 지금부터 10시간 운전해서 가야한다고 하더라고. 응? 어디 사는데? 물었더니 캘거리에서 왔다고 한다. 록키 산맥있는 재스퍼 근처의 작은 도시에서 왔나보더라고.

그랬더니, 첫인상 좋지 않았던 에릭이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너 여기 여행하러 왔다고 했지? 그럼 록키도 보러가겠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오거든 꼭 연락하라며 핸드폰번호를 적어준다. 연락해서 보게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어쨋건 오게되면 연락하라는 그 말 한마디에 괜한 친근감이 더해졌다. 그래 우린 해우소에서 만난 사이잖아. 일단 페이스북 친구 추가.

줄리를 비롯해서, 조금 친해졌다싶은 팔뤄들 붙들고 기념사진 찍었다. 나에겐 그야말로 기념적인 일이잖아. 여기까지 와서 캐내디언들하고 춤추고 가는거.




가장 친근하게 대해줬던 키 185쯤의 제시카. 내가 자기를 "키 큰 금발"로 기억할거라길래, '키가 큰건 분명하지만 금발은 중요하지 않고, 친근하게 대해준걸 기억하겠다'고 했더니 좋아했다. 내가보기엔 블론드나 버넷이나 둘다 노랑머리일뿐이지. 저 사진의 나는 까치발로 선 상태. 제시카는 날 위해 무릎을 조금 굽혔다.


밴쿠버 도착 첫날, 끔찍히도 멀리까지 갔던 랭리(Langley)에서 만났던 브릿. 그녀도 시애틀 지터벅 캠프에 간다고 하니, 거기서도 만날 수 있을듯. 브릿은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잭앤질에 출전했는데, 결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나보고는 왜 출전하지 않느냐고 묻길래, 나는 쑥스러워서 안나간다고 대답했더니 브릿이 하는말, "You dance, you're not shy"라고.

듣고보니 맞는 말이네. 음... 근데 난 좀 shy한 댄서야.
 

에릭(또다른 에릭)과 에디나. 이들은 밴쿠버의 전문강사. 에릭은 모든 부문 다 결선진출한거 같고, 그중에 하나는 우승했다. 에디나도 결선은 다 진출했는데, 아쉽게도 우승은 못한듯.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해서 옆에서 보는 나조차 안쓰러웠을 정도.


헤이즐은 무뚝뚝한 표정에 다부진 골격이, 북미사람과는 조금 다른 인상을 보였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왔다고. 여기는 휴가중에 스키타러 왔다가 때마침 행사가 있길래 참여했다고 한다. 스톡홀름이라고 하면 나름 친근하잖아?



개인적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던 리더. 춤도 수준급이고, 동양인 스럽지 않은 골격에다가 잘 생겼다. 일본계 혼혈 캐내디언인가? 이번 대회의 가장 멋진 리더로 내 맘대로 선정.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타케노우치 유타카 닮았어.


이번 행사의 가장 멋진 팔로워는 역시 가브리엘. 코캐시언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그녀였던것 같다.

아참, 가브리엘은 파트너 블루스분야도 결선에 진출했는데, 블루스답게 느끼한 음악에 갖가지 유연한 몸동작을 보여줬다. 우승자를 뽑는 마지막 퍼포먼스 타임에서는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더니 이래저래 움직이는 동작을 취했다. 뭐하는 건가 시선고정하고 쳐다봤는데, 안에서 보라색 속옷을 꺼내더니 휘둘르고는 파트너의 목에 걸고 질질 끄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관객들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고, 결국 가브리엘 커플이 우승.

사진이 왜 없냐고? 넋놓고 바라보느라, 사진 찍을 생각을 못했어. 

그나저나 고작 2박3일 춤춘건데도 온몸이 뻐근하다.

꽤 지역적인 행사인데도 이렇듯 신나게 잘 놀 수 있었으니, 나머지 행사는 얼마나 즐거울지 기대도 되고, 또 체력에 대한 걱정도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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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왔는가

이번 여행 프로젝트에 다소 모호한 계획이 몇가지 있는데, 밴쿠버 생활이 그러하다. 약 6주의 생활을 하는 거니, 잠시 여행왔다고 하기는 길고, 여기서 산다고 생각하기에는 짧은 그런 모호한 위치.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은, 오전엔 어학연수(!), 오후엔 나머지 여행계획, 주말엔 스윙댄스를 추러다니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는 짧게 나들이를 즐기며 한가함을 즐기고 있다.

가끔은 다른 누구에게서  같은 목표를 찾을 수 없는 완전한 이방인임을 느끼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누구나 어디에선가는 이방인인거다. 어딘가에 소속된 느낌에 편안함을 느끼길 바라지만, 과연 정말로 소속된 것이었던가?

토요일엔 스윙댄스를 추러 다니는데, 가서 춤추다보면, 간단히 이래 저래 말을 걸어주는 애들이 있다. 어학연수생(?)이 캐내디언으로 부터 말걸음을 당하다니, 이거 참 훌륭한 기회 아닌가? 가끔 너무 빨리 말하거나 어려운 말들을 써서 당황 스럽기도 하지만, 나 한국에서 왔다고 하며 멍한 표정 지으면 친절하게 다시 얘기해준다.

그 중에 한국에도 잠시 놀러왔던 제시카라는 팔뤄워가 있다. 키가 184쯤 되보이는 팔로워로 내가 춤춰본 여성 중에 가장 키가 크다. 제시카를 비롯해 몇명은 이런 저런 질문을 해줘서, 내가 한국에서 왔고, 앞으로도 몇주 더 있을 거라는걸 알게됐다. 그런 질문중에 가슴 속으로 꽂히는 한마디,

"So, what are you doing in Vancouver?"

순간 당황해서 박자를 놓치며 스텝이 꼬이는 질문이다. 표면적으로 영어공부와 여행중이라고 얘기하지만, 나는 정말로 왜 왔을까. 밴쿠버가 아니라, 이 커다란 여행을 왜 왔을까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질문이다. 나역시 그 질문을 스스로 하며 대답을 찾는 중이지.

Lynn Bridge 나들이

그건 그렇고, 완전한 이방인으로 떠돌던 중에, 학원에서 알게된 활달한 아그들 덕분에 함께 나들이갈 일이 생겼다. 학원 액티비티로 캐나다 원주민(북미 인디언) 박물관에 갔었는데, 그때 함께 간 아이들이 주말 나들이에 끼워준 것이다. 밴쿠버에 와서 오랜만에 사진기를 들고 나갔다. 날씨도 좋았고, 경치 좋은 산에 가서 상쾌한 공기 마시니 완전 마음 편안해진다.

가서 보니 이들의 지인들이 모여서 열명이 넘게 움직였는데, 다 아시안 애들. (전에도 느꼈지만, 이상하게 끼리끼리 모인단말야) 이들중 왕언니가 83년생인 무리이고, 나는 끝까지 나이를 밝히지 않은채 버티고 있다. (나이를 알면 안놀아 줄까 두려워서 말이지)

 


함께간 일본인 무리. 일본친구들은 딱보면 일본인인걸 알겠단 말이지. 왼쪽부터 유코, 유미, 히토미, 아키나. 아구~ 이름들도 귀여워효.
 

많이도 갔지?


이 다리가 저 긴 이름의 다리. 우측엔 작은 폭포가 있고, 50여미터 아래로 계곡이 보이는 다리인데 걸어가면 휘청휘청 흔들리는데다 난간(?)의 높이가 낮아서 불안했다. 덕분에 스릴있었지만 말이다.





근데, 아주머닌 누구세효?






이 계곡 물은 그냥 마셔도 된는 깨끗한 물이란다. 여기서 도시락 까먹고 쉬고 있는데, 아키나가 바위에 손을 집고 올라가려다, 시계 끈이 풀리면서 계곡물에 시계가 떨어진 일이 생겼다. 떠내려갔을거 같진 않았는데, 보이지는 않고, 아키나는 안타까워하고 있는 상황. 여기서 대한의 청년 둘과 아저씨 1인, 어떻게 할까를 고심하다가, 그 중 한 청년 바지를 걷는다. 그 차가운 물에 다리를 담궈가며 Jump into! 하며 찾으러 들어갔으나, 시계는 보이질 않고 다리만 얼어붙는 상황. 결국 시계는 찾지 못했다.

한국 청년이라 그렇게까지 노력해준걸까? 아님 시계주인이 예뻤기 때문일까? 그 청년 감기 안걸렸나 몰라.


 

돌아오는 배(Sea Bus)안에서 유코가 빛을 잘 받고 있길래 한컷 찍었다. 이뻐서 찍은게 아니라 빛을 잘받아서 찍은거에요, 믿거나 말거나.

파릇파릇한 애들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흐뭇해지지만, 가슴 한켠이 쓰려오는건 왜일까? 나도 저럴 때가 있었나 싶고 말야. 없었을테지만, 이왕 지난 일, 있었다고 착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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