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왔는가

이번 여행 프로젝트에 다소 모호한 계획이 몇가지 있는데, 밴쿠버 생활이 그러하다. 약 6주의 생활을 하는 거니, 잠시 여행왔다고 하기는 길고, 여기서 산다고 생각하기에는 짧은 그런 모호한 위치.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은, 오전엔 어학연수(!), 오후엔 나머지 여행계획, 주말엔 스윙댄스를 추러다니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는 짧게 나들이를 즐기며 한가함을 즐기고 있다.

가끔은 다른 누구에게서  같은 목표를 찾을 수 없는 완전한 이방인임을 느끼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누구나 어디에선가는 이방인인거다. 어딘가에 소속된 느낌에 편안함을 느끼길 바라지만, 과연 정말로 소속된 것이었던가?

토요일엔 스윙댄스를 추러 다니는데, 가서 춤추다보면, 간단히 이래 저래 말을 걸어주는 애들이 있다. 어학연수생(?)이 캐내디언으로 부터 말걸음을 당하다니, 이거 참 훌륭한 기회 아닌가? 가끔 너무 빨리 말하거나 어려운 말들을 써서 당황 스럽기도 하지만, 나 한국에서 왔다고 하며 멍한 표정 지으면 친절하게 다시 얘기해준다.

그 중에 한국에도 잠시 놀러왔던 제시카라는 팔뤄워가 있다. 키가 184쯤 되보이는 팔로워로 내가 춤춰본 여성 중에 가장 키가 크다. 제시카를 비롯해 몇명은 이런 저런 질문을 해줘서, 내가 한국에서 왔고, 앞으로도 몇주 더 있을 거라는걸 알게됐다. 그런 질문중에 가슴 속으로 꽂히는 한마디,

"So, what are you doing in Vancouver?"

순간 당황해서 박자를 놓치며 스텝이 꼬이는 질문이다. 표면적으로 영어공부와 여행중이라고 얘기하지만, 나는 정말로 왜 왔을까. 밴쿠버가 아니라, 이 커다란 여행을 왜 왔을까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질문이다. 나역시 그 질문을 스스로 하며 대답을 찾는 중이지.

Lynn Bridge 나들이

그건 그렇고, 완전한 이방인으로 떠돌던 중에, 학원에서 알게된 활달한 아그들 덕분에 함께 나들이갈 일이 생겼다. 학원 액티비티로 캐나다 원주민(북미 인디언) 박물관에 갔었는데, 그때 함께 간 아이들이 주말 나들이에 끼워준 것이다. 밴쿠버에 와서 오랜만에 사진기를 들고 나갔다. 날씨도 좋았고, 경치 좋은 산에 가서 상쾌한 공기 마시니 완전 마음 편안해진다.

가서 보니 이들의 지인들이 모여서 열명이 넘게 움직였는데, 다 아시안 애들. (전에도 느꼈지만, 이상하게 끼리끼리 모인단말야) 이들중 왕언니가 83년생인 무리이고, 나는 끝까지 나이를 밝히지 않은채 버티고 있다. (나이를 알면 안놀아 줄까 두려워서 말이지)

 


함께간 일본인 무리. 일본친구들은 딱보면 일본인인걸 알겠단 말이지. 왼쪽부터 유코, 유미, 히토미, 아키나. 아구~ 이름들도 귀여워효.
 

많이도 갔지?


이 다리가 저 긴 이름의 다리. 우측엔 작은 폭포가 있고, 50여미터 아래로 계곡이 보이는 다리인데 걸어가면 휘청휘청 흔들리는데다 난간(?)의 높이가 낮아서 불안했다. 덕분에 스릴있었지만 말이다.





근데, 아주머닌 누구세효?






이 계곡 물은 그냥 마셔도 된는 깨끗한 물이란다. 여기서 도시락 까먹고 쉬고 있는데, 아키나가 바위에 손을 집고 올라가려다, 시계 끈이 풀리면서 계곡물에 시계가 떨어진 일이 생겼다. 떠내려갔을거 같진 않았는데, 보이지는 않고, 아키나는 안타까워하고 있는 상황. 여기서 대한의 청년 둘과 아저씨 1인, 어떻게 할까를 고심하다가, 그 중 한 청년 바지를 걷는다. 그 차가운 물에 다리를 담궈가며 Jump into! 하며 찾으러 들어갔으나, 시계는 보이질 않고 다리만 얼어붙는 상황. 결국 시계는 찾지 못했다.

한국 청년이라 그렇게까지 노력해준걸까? 아님 시계주인이 예뻤기 때문일까? 그 청년 감기 안걸렸나 몰라.


 

돌아오는 배(Sea Bus)안에서 유코가 빛을 잘 받고 있길래 한컷 찍었다. 이뻐서 찍은게 아니라 빛을 잘받아서 찍은거에요, 믿거나 말거나.

파릇파릇한 애들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흐뭇해지지만, 가슴 한켠이 쓰려오는건 왜일까? 나도 저럴 때가 있었나 싶고 말야. 없었을테지만, 이왕 지난 일, 있었다고 착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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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은영 2009.04.07 12:51

    오 다들 파릇파릇해~~ 너도 전혀 뒤지지 않고 있어 ~~ 관리 잘했구나.ㅋㅋ
    근데 문득 거기서 잠깐 쉬었다 가는거면 짐관리는 어떻게 하고있는거야.ㅡㅡ?
    갑자기 궁금해지는~~ 오늘 날씨 완전 좋다~ 그 곳도 좋겠지!!! 잘 즐겨랑~
    뒤돌아보면 지금이 완전 또 부러워질테니.ㅋㅋㅋ

    • addr | edit/del hatemogi 2009.04.10 06:35 신고

      배낭여행용 배낭 하나와, 책가방하나만 들고 왔어. 단벌 청년(!)으로 생활중. 똑같은 옷 며칠씩 입고, 일주일에 한번씩 꼭 빨래를 하지. 김동률 노래가사처럼 카메라와 나침반, 그리고 낡은지도, 그들이 나의 동반자.

  2. addr | edit/del | reply donny 2009.04.07 13:20

    깨달음(awakening)을 얻기 위한 여행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음.
    세계를 여행하지만 사실은 자기 내면을 여행하는 거랄까?
    여행의 의미를 찾으면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지도..
    새로 눈뜨고 깨어나는 느낌을 얻길 바람. ^^

    • addr | edit/del hatemogi 2009.04.10 06:36 신고

      여행이라는게 물리적으로는 바깥을 가지만, 사실은 자기 내면을 찾아 떠나는 것일지도. 형과의 공감대는 어릴쩍부터 무섭다니까. 억지로 상대방에게 호응하는 공감이 아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공감대. 그 공감이 동기화 되는 순간이 친밀감의 근본인듯.

  3. addr | edit/del | reply owlish 2009.04.09 16:00 신고

    1차적으로 그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좋아서, 여행을 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근데, 갑자기 요즘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왜 이리 어색하고 그런 느낌을 갖게 하는걸까? ㅋㅋ

    • addr | edit/del hatemogi 2009.04.10 06:39 신고

      나 자신을 새로운 환경으로 던지고, 시험하고 도전하는 마음가짐이 있는거 같아. 새로운 환경으로 떠나면, 다시 처음부터 배워가는 어린아이가 되는 기분이랄까. ㅎㅎ 얼핏 들은 너의 직무이동을 생각해보면 이방인의 느낌이 당연한걸꺼 같은걸?

  4. addr | edit/del | reply donny 2009.04.10 14:38

    여행의 의미를 알게되는 것만으로도 그 여행은 성공?
    반대로 말하면 그리 쉽지않을 것이라는... ^^;;
    올해 초 은사님에게 "스스로 어떤 것(사소할지라도)에 감동받는지를 마음속에 잘 새겨두어야 진정 원하는 것을 알수 있다"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이말이 너에게도 도움이 될 듯.
    화이링~~

  5. addr | edit/del | reply ambrosia 2009.04.15 23:17

    너와는 다른이유겠지만... 항상 장기간 여행을 가면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 가끔은 마음속깊이 이 광경을 즐기지 못하고 방관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달까?
    역시 겉멋으로 남들에게 자랑하려는 쇼맨쉽의 화신인가 란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_-;
    하지만 역시 언제나 넓은 세상은 좋다는것...세상은 아름다운 장소가 많다는것...
    난 일할 때 내자신도 또 쉴때의 내 자신도 사랑하고 싶다.(일도 조코 노는것도 조타는 얘기.ㅋㅋㅋ)

    • addr | edit/del hatemogi 2009.04.17 16:26 신고

      그러게 말이야. "나는 여기에 왜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한편으로 보면, 사실 이 질문은 여행중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되물어야할 문제인거 같아. 어디에 있거나, 나는 여기에 왜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거 말이지.